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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민주주의

글: 돈댕 202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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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주의(大衆主義) 또는 포퓰리즘(Populism)은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철학 으로서,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정의된다. - Wiki

 

오늘 아르헨티나 신문기사가 나왔다. 아마도 포퓰리즘의 폐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는 나라다. 오늘 기사의 논조는 국민들은 행복하지만 국가는 불행하다. 뭐 이런 정도였나? 베네주엘라도 그렇고 아르헨티나도 그렇고 그들이 가진 게 무엇이길래 국민들에게 퍼주기만 했는지. 뭐, 한때는 퍼주기가 가능했다. 석유도 많고 경제도 좋았으니. 이제 경제가 어려워졌는데도 퍼주기를 그만둘 이유가 없다. 왜일까? 민주주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실은 알고보면 민주주의도 포퓰리즘이다.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대중들을 위해야 하니까. 그들의 뜻을 따르는 행위를 보자면 포퓰리즘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내가 무슨 사회학적 지식이 있겠는가? 그냥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포퓰리즘이라는 뜻을 '인기영합주의'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보자면 그렇다. 한마디로 시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일시적인 것만 추구한다는 거다. 거시적으로 보자는 건데 문제는 그 거시적이라는 말의 출처나 기준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좌파는 포퓰리즘인가? 우파는 안 그런가? 그런 좌파, 우파가 다 어울려 살아야 하는게 민주주의인가? 

 

포퓰리즘은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드러난다. 지금처럼 이념이 극대극으로 치닫게 되면 양쪽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만 하게 된다. 그것도 결국 포퓰리즘인게 아닐지. 그런 현상도 다 수용하고 잘 치유해 나가는 게 민주주의라는 데 '차별'과 '혐오'가 남발되는 이 포퓰리즘 사회에서 가능할지 조금 회의가 든다.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가 포퓰리즘 사회인지도 모르겠고.

 

총선공약 경쟁이 벌어진다. 오늘 가장 황당했던 것은 이언주 의원이 이끄는 전진당에서 내세운 대체공휴일 확대. 이 분이 경제가 어렵다고 비판하시던 그 분이 맞나 싶다. 이건 포퓰리즘이 아닌가? 민주당의 무료 와이파이나 정의당의 청년 3000만원. 대안신당의 1억짜리 20평 집. 이런 것은 어떤가? 뭐, 한국당의 '문재인이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반대'보다는 낫겠다 싶다. 반대를 위한 반대, 지지만을 위한 선심성 정책. 뭐 민주주의 사회니까 당연하다 싶다가도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내 앞에 놓여지다 보니 다소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과연 이 난세를 구할 영웅은 없는건지. (응, 없지. 개인이 사회를 바꾸는 건 옛날이나 가능하지. 아무리 그래도 중요한 건 결국 정치지. 알면서도 나는 또 이렇게 글을 토해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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